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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에밀 졸라 소설 목로주점 줄거리 결말

by 수지쉽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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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리뷰 줄거리 결말 

검색창에 목로주점을 치면 노래 가사가 나오고 술집 이름들이 나온다. 에밀졸라의 소설을 제치고 먼저 나오는 것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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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표지

생각해 보면 최근 읽은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뛰어나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에이프릴(금발), 보바리 부인의 엠마,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금발), 목로주점의 제르베즈도 금발이며 아름답다. (엠마가 금발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온다.) 네 권의 예이긴 하지만 이것 말고도 고전 속 주인공들 중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다. 과거 남성 중심의 세계관이 강했던 시절에 쓰인 소설이라 그런지(나를 찾아줘의 작가는 여성이다.) 남성의  로망인 금발 미인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평범하거나 못 생긴 사람들에게는 로맨스가 없다는 말인가.

아무튼 위 소설들의 여성들은 아름답고 결혼 생활과 연애는 파탄 나며  남자들은 대부분 무능한 데다 바람을 피운다.

그러는 이유가 단순한 생물학적 특성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소설의 주인공 제르베즈 때문이다.

제르베즈에 대한 이런 해설이 있다. [시조 아델라이드 푸크의 손녀로서 마카르 혈통인 제르베즈는 비정상적 신경증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게으름, 섹스, 알코올 등 위반의 쾌감에 쉽게 굴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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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가 쓴 마카르 총서는 아델라이드 포크라는 여자를 정점으로 하는 한 가족으로부터 유래한다. 목로주점은 무공 마카르의 일곱 번째 소설이다.

제르베즈는 첫 남자 랑티에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애 둘을 데리고 성실하게 살아간다. 약간 맹한 구석이 있는 사람인데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진달까. 남자들은 아름답고 성실한 그녀를 좋아했고 곧 랑티에의 친구였던 함석장이 쿠포와 결혼한다. 가난했지만 둘은 성실했고 돈도 모았으며 행복했다. 쿠포가 지붕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붕에서 떨어진 쿠포는 점점 변해간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사고를 불행해하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된다.

성실했던 사람이 고작 이런 계기로 게으름뱅이가 되다니, 이건 천성인가 싶기도 하다.

 

한편 제르베즈는 남편의 사고로 모아 놓은 돈을 다 쓰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대장장이 구제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세탁소를 연다.

인상적인 부분은 이 세탁소에서 여는 그녀의 생일 파티 묘사다.

배부르게 먹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음식들을 먹어치운다. 뜨거운 음식을 먹은 뒤 목을 식히기 위해 물대신 포도주를 몇 병씩 들이마시기도 한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들과 그것으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탐욕스러운 돼지 그 자체다. 그러다가 또 금세 인간이 되어(배불러서 기분이 좋아짐) 노래를 부르고 눈물을 훌쩍거리는 것으로 그들이 가난뱅이 공동체임을 확인한다. 

 

랑티에가 돌아오다

파티가 있던 날 랑티에가 돌아온다. 사악한 랑티에는 쿠포를 꼬드겨 그의 집에 머물며 살림을 거덜 내 버린다.

세탁소를 거덜 낸 후에는 식료품 주인 푸아송 부부에게 기상해 그 집안도 먹어 치우는데 실제로 식료품을 들 먹어서 먹어 치우기도 한다. 그는 사탕, 과자, 초콜릿등을 끊임없이 먹는 치우는데 정말 꿀밤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먹어 치우면서도 고도 비만이 아니라 얄밉게 살만 통통하게 오른다. 

책에선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원래 행운을 누리는 것은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라고.

랑티에는   두 집의 아내들인 푸아송과 제르베즈와도 잠자리를 하는데 남편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남자들이 말하는 우정이라는 게 자기 부인보다 우위에 있고 그게 남성성의 상징이라도 되는냥 말이다.

 

쿠포부부는 망했고 열심히 살려는 의지 없이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진다. 먹을 것이 없어도 늘 술에 취해 있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먹을 것을 구걸하는 일을 하느니 차라리 침대에서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한다. 

노숙자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노숙자들은 밥 주고 잠자리 제공해 주는 쉼터에 가서 재활하느니 그냥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자는 것을 택한다. 그들이 과거에 어떤 모습으로 상처를 받아 노숙자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모든 의지가 꺾여 버린 것인지 일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구제를 만나다

 

쿠포는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서 죽어 버리고 굶주린 제르베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팔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그날 제르베즈는 자신을 좋아했던 남자 구제를 만난다.

소설에서 한 줄기 빛과 같고 단 하나 남은 희망이라면 제르베즈와 구제의 우정이다.

그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과거에 아름다웠던 제르베즈에 대한 집착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제는 제르베즈를 집에 데려오고 먹을 것을 주며 거지 같은 몰골의 그녀에게 아직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제르베즈는 구제를 받아주지 못한다. 그에 대한 배려 이기도 하고 마지막 자존심이나 사랑, 그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리 고 어쩌면 그도 제르베즈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동굴 같이 좁은 집에서 죽은 개처럼 푸르뎅뎅한 모습으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다. 구제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작가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탐욕에 젖은 돼지들 사이에서도 인류애를 가진 인간이 하나쯤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바자르 영감의 어린 딸 랄리가 두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부인을 때려죽인 바자르라는 자는 어린 딸 랄리도 매일 학대해 죽게 만드는데 그 와중에도 그녀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늘 집안을 깨끗하게 치우고 동생들을 돌보았으며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도 침착했고 아버지를 생각했으니 말이다.

랄리의 모습이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나는 사람이 많지만 하나 적자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 그리고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목로주점에서는 은어나 비속어가 많은 편이라 번역하는 분도 힘들었다고 한다. 일반 사전이나 은어 사전에도 없었고 프랑스인 교수도 모르는 희귀한 표현들이 많았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흥미로운 뒷 이야기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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